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나는 20대 후반에 기미가 얼굴에 생긴 적이 있다.
발단은 축구시합이었다.
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였는데,
고향에서 매년 하는 면민체육대회에 동네 대표로 축구 시합을 하러 갔다.
축구 시합은 무난히 해 냈다. 나는 내 역할을 충분히 해 냈고 다른 종목도 참가하여 즐겁게 하루를 보냈다.
그런데, 문제는 전혀 예상 못한 곳에서 일어났다.
눈 밑에 자그마한 기미가 자리 잡히게 된 것이었다.
직장 생활하기 전까지는 매일 축구를 했기 때문에 몸에 익숙해져서 아무런 문제가 없었는데,
오랫동안 실외 운동을 하지 않다가 오랜만에 엄청난 자외선을 무방비로 받아서 기미가 생긴 것 같았다.
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.
그런데, 이게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짙어지고 넓어지는 것이었다.
원인은 자외선 때문만은 아닌 것 같았다.
그 당시 직장생활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아주 많이 받았다.
너무 편하게 대학생활을 하다가 조직생활을 하다 보니 스스로 마음의 부담을 많이 느끼고 있었다.
기분 때문인지는 몰라도 스트레스를 받으면 기미가 점점 더 짙어지고 넓어지는 것 같았다.
어느새 기미는 얼굴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어서 심각한 고민거리고 되었다.
그러던 중 나는 직장을 그만두고 중앙아시아로 가게 되었다.
완전히 새로운 환경에서 나는 하루하루 새로운 것을 보고 배우며 지냈다.
그런데 얼굴의 기미는 변함없이 그대로 있었다.
기미에 좋다는 것은 많이 해 보았다.
피부 관리하는 곳에 가서 여러 차례 관리도 받았고,
피부에 좋다는 여러 민간요법도 해 봤다.
밖에 나갈 땐 햇빛에 노출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 가급적이면 그늘로 다녔고 불가피할 경우 얼굴을 가리려고 애를 썼다.
그러나 변함이 없었다.
기미에 대한 걱정은 꽤 심각했다.
아무리 애를 써도 얼굴에 붙어 있는 기미는 떨어지거나 조금도 줄어들 것 같지 않았다.
나는 점점 더 의기소침해졌다.
사람을 만날 때는 기미 때문에 항상 신경이 쓰였다.
기미에 대해서 누가 이야기라도 하면 나는 상처를 입곤 했다.
그러던 어느 날,
나는 문득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.
기미와의 대화라고나 할까.
"기미야,
너 그렇게 나한테 붙어 있고 싶으냐?
그래 너 맘대로 해라.
붙어 있고 싶으면 그냥 붙어 있어라.
나는 모르겠다."
정말 그렇게 마음먹었다.
그리고 거울을 보니 기미가 붙어 있다고 해도
그리 나쁜 얼굴은 아니었다.
그 후로 나는 내 얼굴에 있는 기미의 존재에 대해 잊어버렸다.
신경을 쓰지 않았다.
햇빛을 받아도 그대로 받고 원래 기미가 없던 사람처럼 살았다.
그러고 나서 정확히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른다.
아마 1~2년 정도 지났을 것이다.
어느 날 나는 거울을 유심히 쳐다보았다.
놀라운 일이 생겼다.
그렇게 징그럽게 떡 하니 자리 잡고 있던 기미가 어느샌가 내 얼굴에서 자취를 감춘 것이다.
깨끗하게 사라지고 없었다.
어떻게 그렇게 된 것인지 나는 지금도 정확한 이유를 모른다
그러나 그것은 내 삶에서 일어난 작은 기적 중의 하나였다.